삶과 글

한국 근현대 시 읽기

멋진 하루 인생 2015. 6. 2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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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시 읽기



시의 리듬

시: 운문/소설, 희곡, 비평: 산문

운문은 운율(rhythm)을 바탕으로 쓰여진,

        시행(詩行)을 갖춰 리듬에 따라 쓴 글


→ 리듬은 반복의 원리에서 발생

리듬은 통일성, 연속성, 동일성의 감각을 줌

리듬의 형태는 감정의 상태로써 결정


정형시와 자유시

정형시-율격이 규칙적이거나 운이라 할 수 있는 반복어, 반복어구가 규칙적으로 쓰인 시들

예) 김소월, <진달래꽃>

자유시-일상적으로 쓰이는 구어체 언어를 사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시 역시 산문과 구분되는 리듬이 있음

예) 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한용운, <나는 잊고저>(1926)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저 하여요.

잊고저 할수록 생각히기로

행여 잊힐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면 생각히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 하니,

잊도 말고 생각도 말어 볼까요.

잊든지 생각든지 내버려 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과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저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김소월, <초혼>(1925)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서정주, <국화 옆에서>(1948)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황지우, <마침내 그 40대 남자도>(1985)

#1. 마침내, 그 40대 남자도 정수가아아-- 목놓아 울어 버린다.
#2. 부산 스튜디오의 그 40대 여자는 카메라 앞에서 까무라쳐 버렸다.
#3. 서울 스튜디오의 그 40대 남자는, 마치 미아가 된 열살짜리 아이가 길바닥에서 울듯, 이젠 얼굴을 들고 입을 벌린 채 엉엉 운다. 정숙이를 부르며.
#4. 아나운서가 그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그의 全身에는 지금 어마어마한 海溢이, 거대한 경련이 지나가고 있다.
#5. 각자 피케트를 들고 방영 차례를 기다리던 방청석의 이산가족들이 피케트를 놓고 박수를 쳐 준다.
#6. 카메라는 다시, 가슴 앞에 피케트를 내밀고 일렬횡대로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맞춰지고--- 만오천이백삼번, 만오천이백사번...황해도 연백군, 함경북도 청진...형님, 누님, 여동생, 삼춘, 아버지, 어머니...
#7. 체구가 작은, 한복 입은 할머니 한 사람이 피케트를 들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다. 카메라는, '원산서 폭격 속에서 헤어짐'을 짧게 핥고 지나 버린다.
#8. 다시 화면은 가운데로 짤려서 한쪽은 서울스튜디오, 다른 한쪽은 대구스튜디오를 연결하고--- 여보세요. 성함이 김재섭씨 맞아요? 아버지 이름이 뭐예요? 맞아요. 맞어. 재서바아, 응. 그래. 어머니는 그때 정미소에 갔다오던 길이었지요? 미군들이 그때 폭격했잖아. 맞어, 할머니랑 큰형님이랑 그때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방안에 총알다섯 개가 들어왔다는 말 들었어. 맞어. 둘째 삼춘이 인민군으로 끌려가 반공포로로석방됐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맞지요? 맞어. 맞아요. 맞어, 재서바아. 어머니 살아계시니? 어머니이이---
#9. 화면은,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자기 가슴을 치며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중계홀 중앙으로 뛰어나간 김형섭씨를 쫓아간다. 그는 조명등이 눈부시게 내려쬐는 천정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대한민국만세를 서너 번씩 부르고 있다.

#10. 남자 아나운서와 여자 아나운서가 그를 다시 카메라 앞으로 끌고 왔을 때 그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계속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케이에스 감싸함다, 정말 감싸함다, 이 은혜 죽어도 안 잊겠음다, 한다.

#11. 남자 아나운서는, 아까 김씨 입에서 얼결에 튀어나온, 방안에 총알이 다섯 개 들어온 대목이 캥기었던지, 그에게 그때의 정황설명을 요구했으나 그는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네 네, 그때 전 적지가 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데리고 내려올려고 했지요. 그런데, 중공군이 내려오고, 또, 이북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고 해서, 부랴부랴
#12. 화면은 이제 춘천 방송국으로 가 있다. 그리고 사리원 역전에서 이발소를 했다는 사람, 문천에서 철공소를 했다는 사람, 평양서 중학교 다녔다는 사람, 아버지가 빨갱이에게 총살 당했다는 사람, 일본명이 가네다마찌꼬였다는 사람, 내려오다 군산서 쌀장수에게 수양딸을 줬다는 사람, 대구 고아원에 맡겨졌다는 사람, 부산서 행상했다는 사람.
#13. 엄아아 왜 날 버렸어요? 왜 날 버려!
#14. 내가 죽일 년이다. 세째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15. 아냐, 이모는 널 버린 게 아니었어. 나중에 그곳에 널 찾으러 갔더니 네가 없드라구.
#16. 누나야 너 살아 있었구나!
#17. 언니야 왜 이렇게 늙어 버렸냐, 응? 그 이쁜 얼굴이, 응?
#18. 얼마나 고생했니?



황지우, <심인>(1983)

김종수 80년 5월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